왁자지껄 시장바닥…억센 사투리만큼 억센 삶들이 녹아있다 국제시장은 워킹투어 필수코스…'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자부심도 여전 쇼핑거리로 유명한 광복로도 강추…"개성만점 상가간판 꼭 챙겨보세요" "자갈치 시장·남포동 영화거리·근대역사관·영도다리도 놓치면 후회해요"
보수동책방골목에서 큰길(대청로)을 건너면 남쪽으로 왁자지껄한 시장바닥이 하나둘 펼쳐진다. 깡통시장,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그리고 건어물 시장까지. 목소리 큰 시장바닥 아줌마들의 억센 사투리로 대표되는 부산의 시장에는 아줌마들의 억센 사투리만큼 억센 삶들이 녹아있다.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는 재미는 바로 그 억센 삶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행객의 눈길을 특별히 끄는 것은 잘 정리된 먹거리 노점상. 깡통시장 인근엔 감주와 단팥죽(새알심 대신 인절미를 잘라 넣어준다)만을 파는 노점상이 있고, 만물의 거리 근처엔 충무김밥과 각종 전만 파는 노점상이 몰려 있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보니 간판에도 외국어가 씌어있다. 노점상마다 번호를 매겨 시장 특유의 무질서 속에서도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 바닥에서 가장 큰 시장은 국제시장이다. 이 시장의 출발과 성장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시대 이 곳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초량왜관(倭館)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회사와 공장이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자국으로 귀국하려던 일본인들이 공장에 쌓아둔 고무신이며 옷 같은 생활필수품을 시장에 가져 나오면서 이 곳은 한꺼번에 엄청난 물자가 쏟아지는 임시 시장이 된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 외국에서 가지고 온 물건 중 쓸만한 물건을 내놓기도 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거나 일본에서 밀수입되는 물건들이 유통됐고, 그래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때 '사람 빼고는 모두 외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밀수품 거래가 호황이었다. 그런 호황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자부심은 여전하다. 시장 골목골목 다 구경하며 돌아다니려면 한나절은 족히 필요하다.
부평동과 국제시장을 돌고 나서 한 숨 쉬어 갈 겸 부산근대역사관에 들러볼 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로 건립돼 해방 후부터 1999년까지 미문화원으로 사용되다 2003년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장됐다. 식민지 수탈에 앞장섰던 회사의 건물에서 미국의 대외정책홍보기관, 그리고 교육 현장의 장소로 쓰이기까지 이 건물이 약 80년(1929년 준공) 지켜본 세월 또한 만만치 않다.
이 건물은 역사관으로 개장하기까지 사연이 길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굴곡의 역사 현장을 보존하자는 입장이었고, 인근 상인들은 이 건물이 그동안 지역 상권에 준 타격이 컸기 때문에 허물어야 한다고 맞섰다. 1982년 그 유명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기억한다면 이 주변의 경찰 경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상인들의 주장도 이해될 것이다. 건물 활용에 관한 공청회장에서는 종종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결국 학계와 시민단체의 설득이 먹혀들었다. 지역사회의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예다. 그러나 정작 역사관 내 전시장은 텍스트 위주의 전시로만 일관해 생동감이 떨어진다. 이 역사관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준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용두산공원을 거쳐 광복동으로 내려온다. 쇼핑거리로 유명한 광복로는 요즘 간판정비 때문에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간판의 크기를 줄이고 각 상점의 개성을 살렸고, 길은 보행자에게 편하도록 만들었다. 상인들은 6·25전쟁 때 문화인들의 거리(이 곳엔 다방, 음악감상실, 그리고 술집으로 가득했다)였던 당시의 영화(榮華)를 조금이라도 살려보자며 상가번영회 수준을 넘어 '광복로 포럼'을 조직했다. 광복로를 문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실험이 올해로 2년째다.
광복로 서쪽 끝은 '영화의 거리' 남포동으로 이어진다. P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의 명물로 자리잡은 세계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을 하나씩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산을 세계에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광장에서 태동됐으나, 올해로 12회째를 맞으며 영화제는 그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갔다. 2008년에는 센텀시티 문화테마파크에 영화제 전용관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앞으로 PIFF광장은 그 태동장소라는 이름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PIFF광장에서 큰길(구덕로)을 건너면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진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사투리를 리듬감있게 살린 구호가 정겹다. 자갈치 시장은 현대식으로 멋지게 지어졌지만, 아무래도 시장의 재미는 노점상이다. 자갈치시장 주변은 오전 3시쯤 가장 붐빈다는데, 다듬어지지 않은 삶의 활력이 필요하다면 그 시각에 한번쯤 가볼 일이다. 자갈치시장을 서쪽으로 걸어나가면 건어물시장을 만난다. 이 시장의 건물 중에서는 일본식 적산가옥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게 많다. 일부 학계에서는 이 건물들을 보존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여론은 모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부산 골목 답사의 마지막 장소는 영도대교(1931년 착공, 1934년 개통) 동쪽 다리 아래다. 이 곳엔 점집이 몇 개 남아 있는데, 6·25전쟁 때는 그 수가 30개는 족히 넘었다 한다.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묻던 그 가난하던 시절도 추억이 된 지 오래다. 영도다리는 '보존과 철거 논란' 끝에 보존하기로 결정됐지만 원형 보존과 함께 '6차로 확장 및 보강'이라는 난제(難題)가 남아있다.
이번 답사 코스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옛 부산시청 자리에 지상 107층의 제2롯데월드가 2013년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호텔, 백화점,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의 복합공간이 들어설 이 건물은 부산의 새 명물이 될 예정이다. 물론 그 대가는 도로 맞은편 남포동 일대 골목의 큰 변화일 것이다.
인터뷰-주경업 부산민학회장
서민 눈으로 도시역사 연구, 옛 골목 흔적 사라져 아쉬워
골목을 취재하러 왔다는 말에 주경업 부산민학회장(66)은 만사를 제쳐놓고 기자를 안내했다. "골목이 있어야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골목'시리즈라고요? 거 참 잘 하는 거예요."
영남일보 지면을 보지도 않고 칭찬부터 한다. 그는 20여년간의 교사 생활을 접고 부산의 역사를 현장에서 공부하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통치자를 포함한 '높은 나리'의 눈이 아니라 일반 서민(民)의 눈으로 이 도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작업을 매주 부산민학회 회원과 답사를 통해 하고 있다. 그는 특히 광복동에 애정이 많다. 그가 살아온 곳이고, 그가 사랑하는 부산의 문화예술이 싹튼 곳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광복동과 남포동을 합쳐 광포동이라고 곧잘 부르기도 했지요. 6·25전쟁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 광복동은 동광동, 창선동 일부까지를 아우렀어요. 한집 건너 다방이어서 문화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고, 죽이 맞으면 단골집으로 술추렴도 갔고요."
언젠가부터 광복로가 패션거리화하면서 밀려난 이런 흔적들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광복로 상인들이 만든 '광복로 포럼'에 자문 역할을 하면서 현대의 문화거리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2007-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