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한겨레온 85

“교동시장 시계방·수성못 소나무·만둣국…아버지 자취 그립습니다”

[기억합니다] 박태석님께 올리는 아들의 사부곡 1954년 대구 수성못에서 찍은 부친 박태석씨의 젊은 날 모습. 황해도 벽성군 대거면 출신 실향민 한국전쟁때 홀로 내려와 대구 정착 작은 시계방 하며 3남1녀 뒷바라지 은퇴뒤 교회잡지에 시도 종종 발표 평생 고향 그리워하다 30년 전 별세 얼마 전 인감도장을 찾다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예물시계를 발견했다. 결혼할 때 아내가 사 준 시계다. 그동안 찬 적이 없어 거의 새것인데 이제는 내 손목이 굵어져 시겟줄이 좀 짧았다. 대구 교동 귀금속거리에 가서 시곗줄을 늘렸다.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버지는 이 근처 교동시장에서 강화도 교동 대룡시장 시계방보다 좀 작은 시계방을 하셨다. 겨울에는 연탄 1장이 들어가는 화덕을 들고 출근하셨다. 퇴근하실 때는..

경주 남산 9. 불곡 마애여래좌상

드디어 불곡 마애여래좌상를 찾았다. 아껴놓았던 예쁜 옷을 꺼내 입는 기분이랄까. 유홍준선생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권에서 ‘고신라불상의 백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찾아갈 때 첫날은 못 찾고 다음날 서너 시간을 헤매다 겨우 감실부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하여 정신 바짝 차리고 찾아 나섰는데 이젠 워낙 유명해지셔서 그런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 부처골에 있다. 남산 골짜기 골짜기 부처님이 안 계신 곳이 없건만 여기가 부처골짜기, 불골, 불곡이라 불리는 것이 이 감실부처님 위상을 이야기해 준다. 남산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불상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7세기 전반 선덕여왕시절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보물이다. 보물 제 198호이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이 정..

경주 남산 8. 남산동, 국사골, 지바위골 삼층석탑들

남산 중에 남산 경주 남산동 중앙에 서출지라는 연못이 있다.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오래된 못이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사금갑(射琴匣)이야기가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날 행차를 하는데 까마귀가 울어 왕이 기사를 시켜 따라가게 하였는데 중간에 놓치고 근처를 배회하던 중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편지를 한 통을 주며 ‘이 편지를 열어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명이 죽는다.’고 하였다. 왕은 한명만 죽도록 열지 말라 했는데 일관(日官)이 ‘두 명은 평민이요, 한명은 왕이다’하여 편지를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 3자 즉 ’거문고갑을 쏴라‘란 글이 있었다. 궁에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니 그 안에 역모를 꾀하던 왕비와 중이 있었다 한다. 이 때부터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지어 ..

경주 남산 7. 칠불암 마애불상군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보러 갔다. 남산에 하나뿐인 국보이다. 기대가 크다. 일기예보가 맑음이었는데 염불사지에 도착하니 비가 뿌린다. 우산을 쓴 등산객도 있지만 난 일기예보를 믿기로 했다. 국보를 햇살아래서 보고 싶었다. 염불사지에는 잘 생긴 삼층석탑이 두 개나 서 있다. 염불 안하는 절도 있나 이름이 왜 염불사였나 했더니 옛날 이절 스님 염불소리가 서라벌 17만호 들리지 않은 곳이 없어서 염불사라 했단다. 염불사지 담 너머 매화꽃이 봄을 알리고 있다. 계곡에 맑은 물이 많다. 물고기도 떼 지어 헤엄친다. 한참을 오르니 염불사 요사채 대안당이 보인다. 대안당 옆에 샘이 있었다. 대안당 마루에 몇 분이 쉬고 계셨다. 대안당에서 염불사로 오르는 길이 꽤나 가파르다. 여기 역시 조릿대가 무성하다. 숨이 턱에 차오..

강화도 소풍

며칠 전 친구 셋이서 강화도를 찾았다. 소풍 전 날 밤같이 잠을 설치고 맛있다는 동네 커피 집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3잔을 텀블러에 담아 약속장소로 갔다. 코로나시대 여행을 위해 1톤 장난감을 몰고 나온 안전무는 입이 심심할까 웨하스를 준비했다. 둥글게 생긴 웨하스가 질기다. 이렇게 질긴 웨하스를 먹고 난 후에는 꼭 이를 닦아야한다고 종합병원 치과 한과장이 한마디 한다. 날이 참 좋다. 옆에서 달리던 쌍용서 만든 군용 지프를 보고는 군대시절 이야기가 한참 오고갔다. 먼저 강화전쟁박물관을 찾았다. 실내관람은 제한되어 밖만 보고는 고려궁지로 향한다. 한과장이 고려 무신정권 말기 대몽항쟁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드라마 무인시대에 나온 박노식 아들이 무슨 역을 맡았다고 하면서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

경주 남산 6. 열암곡 1사지 산산조각난 불상

‘5cm 기적’을 보고 싶었다. 열암곡 마애석불 말이다. 새갓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갓 사이의 골짜기라고 새갓골이라 부른단다. 산 사이 골짜기라 그렇다는데 골짜기야 모두 산 사이에 있는데 말이다. 옛날에는 바우골(巖谷)이라 한 모양이다. 열암곡(列巖谷)이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줄지어 있다고 그리 부른 것 같다. 오르는 길가 노루발풀이 반갑다. 열암곡 1사지를 들렀다가 열암곡 마애여래입상 있는 곳으로 가려했는데 1사지 입구를 모르고 지나쳤다. 열암곡 마애불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근데 주변공사중이라 펜스를 쳐 놓았다. 울타리 너머로 열암곡 석조여래좌상은 보인다. 비닐에 싸여 계시다. 혹 마애불을 세우는 공사인가 싶어 남산연구소에 전화했더니 80톤이나 되는 마애입상을 세우지는 못하고 주변..

예천 선몽대

백송마을에 있는 명승 제 19호 선몽대(仙夢臺)를 찾았다. 도청신도시에서 10분 거리다.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26세 때 지은 누정이다. 이열도의 할아버지 이하는 이황(1501~1570)의 둘째 형으로 예천 박심의 딸과 결혼해 예천 용문 금당실에 살았다. 이열도의 아버지 이굉이 백송마을로 들어왔다. 이열도는 이황의 종손이자 제자였다. 꿈에 선몽대 자리에 신선들이 노니는 걸 보고 정자를 짓고 ‘선몽대’라 하였다. 이황이 직접 ‘선몽대’ 편액 글씨를 쓰고, 시도 지었다. 경관도 수려하지만 그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그 후 당대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방문하여 많은 글을 남겼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성일, 류성룡, 정탁, 김상헌, 이덕형, 정약용 등이다. 먼저 퇴계 이황의 시를 보자. 寄題仙..

경주 남산 5. 천룡사지 삼층석탑

천룡사지를 찾았다. 틈수골에서 올랐다. 천룡사 바위틈에서 물이 나와 틈수골이라 했다고도 하고, 골짜기 틈틈이 물이 나와 틈수골이라 했다고도 한다. 하여튼 물이 많은 골짜기인 모양이다. 연못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와룡동천’이 나온다. 경주 최부자댁 7대 용암 최기영이 은거하기 위해 1814년 와룡암을 지었다고 한다. 이 때 연못도 만들고 계곡을 와룡동천이라 부른 모양이다. 그 후 1825년 58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떠나고, 별장으로 이용하다가 법당을 만들고 부처님을 모셔 집안 평안을 비는 와룡사가 되었다 한다. 동지라 팥죽을 끓이는지 분주하다. 와룡사를 뒤로 하고 한참을 오르면 감나무, 향나무, 대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무덤 몇기가 보인다. 까치밥으로 그냥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참 많다. 양지바..

경주 남산 4. 용장사지 보물들 - 매월당 김시습의 자취를 따라서

날이 차다. 어제에 비해 찬 거지 원래는 더 차야한다.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남산에서 가장 깊고 큰 계곡 용장골을 오른다. 용장마을에서 용장사지를 찾아 나섰다. ​ 12월 중순인데 계곡물은 아직 얼지 않았다. 꽝꽝 얼어야 정상이다. 양지바른 곳, 물살이 센 곳만 얼지 않고 산짐승들에게 마실 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꽝꽝 얼었던 계곡이 얼음 아래서부터 녹아 졸졸졸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이다. 더 추워지길 바라며 산을 오른다. ​ 용장사는 생육신이신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한시도 지었다. 용장골에서 - 매월당 김시습(1435~1493) - 茸長山洞窈 (용장산동요) : 용장골 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불견유인래) :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細雨移溪竹 ..

경주 남산 3.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월성대군단소에서 약수골로 올라 금오봉 근처에서 쉬고 비파골로 내려왔다. 월성 박씨 종친회에서 시조인 월성대군과 생몰일, 묘소등이 전해지지 않는 11위 선조를 모시는 제단이 월성대군단소이다. ​ 여기서 눈에 특히 좋다는 약수가 나온다는 약수골로 남산을 오른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참 좋다. ​ 약수계곡 석조여래좌상이 1km, 마애입불상이 1.1km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열심히 올라왔는데, 마애입불상이 0.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났다. 석조여래좌상은 어디있지, 뭔 이정표가 이래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바로 뒤에 불두가 사라진 부처님이 한분 앉아 계신다. 바로 옆에 불상이 올려져 있던 좌대 중대석과 상대석도 있다. ​ 불상 바로 뒤쪽 바위 위에 대좌 하대석이 있다. 아마 이 근처에 불상이 처음 자리했던..